폭염속의 오아시스처럼 공간 연출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를 살펴본다

 [페어뉴스]= 연일 폭염특보가 날아오는 가운데 지난 8월5일 시미즈다카시 감독의 <마녀배달부 키키>로 막을 올린 제17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8월12일 8일간의 대장정을 마친다. 영화제가 열린 CGV신촌 아트레온과 이화여대의 아트하우스 모모 일대는 한마리 무지개빛 사슴이 거니는 푸른 포스터가 폭염 속의 오아시스 같은 공간을 연출하였다. 
특히 올해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예년처럼 개최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올해 영화제의 슬로건 “Keep on Going”처럼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자체자금과 후원만으로 전력을 다해 성공적으로 영화제를 개최했다.  

41개국에서 온 188편의 작품 상영, 어느 해보다도 풍성했던 영화 프로그램
키즈아이, 틴즈아이, 스트롱아이의장단편 초청부문과 경쟁 9+, 경쟁 13+, 경쟁 19+ 등 공식경쟁부문, 그리고 체코애니메이션과 한국다큐멘터리 특별전 등 총 8개의 섹션에서 41개국 188편이 상영되었다. 이 중 경쟁부문으로 800편 가까운 출품작에서 엄선한 단편 99편이 상영되어 어느 해보다도 치열한 경쟁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스트롱아이의<미니의 19금 일기 Diary of a Teenage Girl>과 특별전의 <잉여들의 히치하이킹Lazy Hitchhikers' Tour de Europe>은 영화제 최고 인기작으로, 일찌감치 예매 매진을 이루었다. 8일 동안 벌어진 제17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2회의 무료상영을 포함하여 총 96회의 상영이 이루어졌다.

 
관객과의 대화는 총 27회가 진행되었다.<잉여들의 히치하이킹>에는 이호재 감독과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김휘(휘), 하승엽(하비), 이현학(현학)이 모두 자리를 함께 하여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과 열띤 대화를 진행하였다. 극장을 찾은 한 중년 관객은 “청년들의 생각과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며운을 띄웠고, 대학교 1학년인 여학생은 “고3때 이 영화를 처음 봤고, 이제 다시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휘’ 역할의 김휘는 관객과의 대화 도중, “7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청소년영화캠프를 참여했었다. 10년만에 영화를 갖고 무대에 서니 감개무량하다”며 소감을 밝혀 박수갈채를 받았다. 
시미즈다카시 감독의 <마녀배달부 키키>, 다이고 마츠이 감독의 <세상의 끝>, 원작소설가 조지아 빙 작가의 <몰리문의 놀라운 최면술책>, 장 폴 카르디노감독의 <소녀들의 반란>, 팻밀스 감독의 <괴짜상담사> 등 해외에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를 방문한감독 및 작가와의 대화도 뜨거운 호응 속에 진행되었다. 
한국영화와 경쟁부문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영화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오고 갔다. 가족 관객들이 유독 눈에 띈<아버지의 이메일>의 홍재희 감독은 부상으로 기브스를 한 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발을 짚고 왔다”며 한국 근대사의 질곡과 가족의 아픔, 다큐멘터리를 하는 감독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날카로운 질문들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김성호 감독은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폭넓은 관객의 환호를 받았고, 부산에서 올라온 장희철 감독과 육체의 장애를 안고 행위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주연 강성국씨가 참여한 <눈이라도 내렸으면>의 관객과의 대화는 영화의 감동이 상영이 끝난 이후에도 대화의 감동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단편영화 <호산나>의 나영길 감독에게도 감독의 세계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특히 주연배우 지혜찬은“매번 학기중이어서 상영을 참석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고3이지만 방학이라 참여할 수 있었다”며작품상영을 기뻐했다. 

읽어주는 영화는 시각장애우와 자막을 읽기 어려운 미취학 어린이, 노인층을 위해 전문 동화 구연가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며 쉽고 재미있게 영화 내용을 해설해주는 상영으로 <멋진 아인 울지 않아>와 <알버트>를 동화구연가 문수정씨와 박규선씨가 해설을 맡아 주었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 열정을 보여준 감동의 해외게스트들! 
<괴짜상담사 Guidance>로 영화제를 찾은 팻밀스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 외에도 영화제 심사위원, 청소년영화제작캠프 마스터클래스 등 1인3역을 하며 영화제 스태프에 버금가는 역할을 해 냈다. 심사위원을 맡은 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 프로그래머 안스카포크트는빽빽하게 메모가 적힌 노트를 보여 주며 “99편이나 되는 경쟁작을 다 보느라 힘들기는 하지만 좋은 영화가 많아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심사소감을 밝혔다. 개막작 <마녀배달부 키키KiKi’s Delivery Service>로 영화제를 찾은 시미즈다카시 감독 역시 청소년영화제작캠프에서 연출 마스터클래스를 맡아 영화를 사랑하는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몰리 문의 놀라운 최면술책 Molly Moon and the Incredible Book of Hypnotism>의 원작자인 조지아빙은 직접 챙겨온 선물을 관객에게 나눠주며 “이 좋은 영화제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내년에는 아들과 다시 찾아오고 싶다”고 영화제를 응원했다. 

영화를 통한 국내외 청소년의 교류 - 국제청소년영화제작캠프와 국제청소년심사단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와 함께 청소년들을 위한 영화 제작 캠프와 국제 청소년 심사단 캠프가 국내외 55명의 영화제작캠프 참가자와, 40명으로 구성된 국제청소년심사단과 함께 진행되었다. 미래의 영화인을 꿈꾸는 전 세계에서 모인 캠프 참가자들은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심사에 참여하며 영화인의 길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는 시간을 가졌다. 
5일, 영화제의 시작과 함께 청소년영화제작캠프도 발대식을 열어 3박 4일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시미즈다카시 감독, 김진근 배우, 감독이자 작가 겸 배우인 팻밀스 감독 등 영화 거장들의 마스터 클래스를 듣고, 조별로 직접 영화를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캠프 해단식에서는 각 조별로 만든 영화를 상영하여 서로의 성과물을 확인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9일에는 영화제작캠프가 끝남과 동시에국제청소년심사단캠프가 시작됐다.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이자 본 영화제 심사위원이기도 한안스카포크트의 비평 특강과 영화 상영 및 토론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경쟁 13+ 작품을 관람한 후 국제청소년심사단상 수상작을 결정하였다.
캠프에 참가한 미국 참가자는 ‘전 세계에서 온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좋았고 잘 기획된 캠프 프로그램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소감을 밝혔다.

흥미진진했던 특강,진지한 화두를 던졌던 포럼
<신화, 영화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마련된 인문학특강에서는 이 주제로 저술과 강의활동을 지속해 온 김윤아 선생이 그리스, 켈트, 북유럽, 일본신화 등을 넘나들며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모노노케히메> 뿐만 아니라 초기 헐리우드 판타지영화까지 다채로운 동영상클립과 함께 신화의 세계를 펼쳐 관객들을 흥미진진한 신화와 판타지의 세계로 이끌었다. 

“청소년문화의 현재와 청소년예술교육의 전망”이라는 근본적인 화두를 던지며 열린 영상미디어교육포럼은 문화평론가 정윤수 선생의 “사회 없는사회, 성장 없는 성장”이라는 해방 전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장 문학과 영화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주제로부터 시작하여, 꿈이룸학교의 장영승 대표의 “꿈은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 청소년극단 유리날개의 하미숙 대표의 “청소년 문화와 예술 그리고 공감”, 영상교육 큐레이팅기업㈜21그램의 이성래 대표의 “청소년 영상제작교육의 방향성과 비전”에 이르기까지 이론과 실천, 의지와 경험을 고루 나누는 의미 깊은 자리였다. 예정된 2시간을 훌쩍 넘어서 진행된 포럼에서는청소년문화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질문에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건강하다. 어두운 것은 우리 사회이며,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건강함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란 대답이 나왔으며, 섣부른 재단과 판단에 대한 경계도 조심스레 제기되었다. 특히 하미숙 대표가 보호시설의 청소년들에게 뮤지컬을 가르치다가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자 다가온 일부 사람들이 사진찍기나 성과보이기를 더 큰 목표로 삼는 지점에서 받은 실망과 상처를 토로할 때는 다들 숙연히 공감하기도 했다. 틀을 만들어 청소년 문화를 그 속에 안전하게 넣고자 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예술교육에 있어서는 네트워크를 이루어 갈 수 있는 가능성도 보인 포럼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스스로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 자문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청소년을 위한 영상문화의 향유, 국제교류 및 교육의 장으로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 의미와 역할재정립 노력 돋보여 
서울국제청소년영화캠프는 전세계 청소년들이 참여하여 함께 영화를 배우고 만들어 내는 국내 유일의 국제청소년영화제작캠프로 국내외 청소년들이 영화를 통해 소통하는 프로그램이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영화를 상영하고 수상작을 해외영화제를 통해 소개하는 노력 또한 계속되어 스위스와 아일랜드의 청소년영화제에서 한국청소년영화를 소개하고 수상의 결과도 이끌어 냈다. 이러한 역할이 서서히 성과를 내고,다양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영화들의 선정과 부대 행사의 배치를 통해서 제17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영상을 통해 어린이, 청소년들이 소통하고 성장하는 장”이라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그 의미들을 다시금 정립하고 내실을 기해 나가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행사였다. 

“개막식 장소 인근이 공사중이라 접근이 불편했던 점이 죄송스러웠다”며 말을 꺼낸 김종현 집행위원장은 “많은 불안과 걱정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하루, 이틀 자리잡아 가는 모습을 보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며 스태프와 자원활동가들의 노고에 특히 감사를 표했다.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운영위원과 집행위원 분들, 후원해 주신 분들, 잠 못 이루며 영화제를 헌신적으로 준비해 준 스태프, 그리고 영화제가 돌아가게 만들어 준 자원활동가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분들에게 큰 마음의 빚을 졌다”고 말했다. 영화제와 청소년영화캠프 두 큰 행사를 무리 없이 치러 낸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앞으로 풀어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매년 지속적으로 영화제를 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지원금의 정착이 절실하다”며“청소년영화제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에 주목해 달라”고 호소했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무산될 뻔한 제17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를 치러낸 에너지를 기반으로, 더욱 성숙한 영화제로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모두의 한결 같은 바램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