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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오늘의 서평)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서

  [페어뉴스=장지연 칼럼니스트]= 필경사 바틀비(허먼 멜빌저, 문학동네펴냄)는 월 스트리트 ○○번지 2층, 평탄하게 사는 게 최고라고 확신하는 변호사를 화자로 삼아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에는 필사를 하고 글자 수대로 돈을 받던 직업이 필경사였다. 그를 보면서 또 다른 필경사인 니퍼와 터키의 괴팍함을 중화시켜 줄 것을 기대했다. 니퍼와 터키, 진저넛은 모두 본명이 아니라 서로에게 붙여 준 별명으로 각자의 개성이나 인격을 보여준다고 생각되었다. 변호사의 사업이 번창함에 따라 새 필경사를 고용하였는데 그의 이름은 바틀비였다. 처음에 바틀비는 성실하게 일을 잘 수행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평소처럼 일을 맡기자 바틀비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고 하여 변호사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후로도 바틀비는 일을 하지 않고 창문 건너편의 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틀비를 설득해 보려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변호사는 바틀비의 이러한 태도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려 했지만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며 내적갈등을 겪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호사는  바틀비에게 연민과 혐오가 뒤섞이게 되어갔다.
설득시킬 수도 해고 할 수도 없었던 변호사는 이사를 결정했다. 이사를 결정함에도 불구하고 바틀비는 여전히 그 곳을 떠나지 않았다. 여전히 그 곳을 떠나지 않던 바틀비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 의해서 툼스 구치소로 보내지게 된다.
구치소에서 음식을 거부하던 바틀비는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 죽은 후 몇 달 뒤에 들린 소문은 바틀비는 위싱턴의 사서(死書)였다는 것이었다.

중단편의 길지 않은 글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라는 말이 메아리처럼 퍼지는 소설이다. 이야기 자체는 모순으로 가득하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바틀비를 해고하지 않는 변호사의 우유부단함, 공동체사회에서 내가 하지 않음으로써 업무가 가중 될 나머지 필경사들, 사무실이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바틀비로 인해 불편한 세입자들.. 긍정적인 면으로 해석한다면야 백지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바틀비로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형이상학적 관점, 신학적 관점, 병리학적 관점 등 여러 가지의 관점에서 이해 가능한 이 작품은 비인간적 노동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 접할 때의 느낌은 병리학적 접근이었다.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타인에게 어떤 피해가 될지 먼저 생각하게 된다. 허긴 요즘 세대의 사고방식은 나를 먼저 생각하지만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파급되는 나비효과에 대해서 생각 안 할 수 없는 것이 선택의 중요성이다.
병리학적으로 보는 것은 의욕상실과 무감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1층에서 옥상까지 수직으로 관통된 건물의 2층의 전망은 풍경화가들이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결여되어 있어 단조롭게 느낄 것이다. 주변 건물은 매우 높아 거대한 사각 물탱크와 흡사했다고 묘사한 것은 삭막한 자본주의의 표현일 것이다.

도무지 왜 하는 편이 아닌 안 하는 편을 단호하게 택했는지 궁금하다. 어떤 결단이든 용기와 노력은 필요하다. 왜 안 하는 편을 택하는지에 대한 한 줄의 언급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모호한 느낌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일관된 자기 주장을 표현하기 위함인가?
바틀비가 끝내 죽음을 맞이한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내는 숙제이다.

이 책은 무로 돌아가는 한 인간의 생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급진적이든 소극적이든 자신의 표현을 하며 타인은 이해하지 못 할지언정 아마 자신에게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을 것이다.
삶에 지쳐 소극적인 저항을 하고 싶을 때 한번쯤 읽고 생각해 볼만한 책이라고 본다.

이책의 저자 허먼 멜빌은 에드거 앨런 포, 너대니얼 호손과 더불어 미국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룬 상징주의 철학적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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